<아테네 학당> : 교황청에 그려진 이교도 철학자들.
스승에게 독립한 라파엘로는 예술의 메카인 피렌체로 향했다. 그런데 그 무렵 메디치 가문은 몰락했고 피렌체는 더 이상 예술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반면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로마에서 대규모 공사를 벌이며 예술가들을 영입하고 있었다.
우르비노에서 갓 상경한 라파엘로를 로마로 이끌어준 사람은 같은 고향 출신의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 mante, 1444~1514였다. 그는 건축적 재능만큼이나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브라만테는 성 베드로 성당을 새로 짓는 대사업을 주도하며 작업에 참여할 예술가들을 직접 불러 교황에게 소개했는데 그중에 라파엘로도 끼어있었던 것이다.
율리우스 2세는 브라만테가 소개한 스물다섯의 젊은 화가에게 교황 집무실로 쓰이게 될 <서명의 방> 벽화를 맡긴다. 교황은 당대의 최고 철학자들과 의논하여 그릴 벽화의 주제도 정해주었다. 법학, 철학, 신학, 시학(예술). 이렇게 네 가지 주제로 반원형의 네 벽면의 채우는 것이 라파엘로의 첫과제였다. 이 방의 그림들은 모두 훌륭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철학을 주제로 한 <아테네 학당>이다.
이 그림에서 라파엘로는 몇 개 안되는 계단으로 공간을 분리시켜 화면을 안정적으로 나누었다. 계단 위에선 플라톤(중앙에 붉은 망토를 두른 인물), 아리스토텔레스(푸른 망토를 두른 인물)를 비롯한 인문 철학자들이 토론을 하고, 계단아래에 피타고라스(왼쪽 하단에 큰 책에 메모를 하는 인 물), 유클리드(오른쪽 하단, 컴퍼스를 들고 석판에 도형을 그리는 인물)와 같은 수학자들과 자연철학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연구를 하고있다. 그리고 개처럼 거리에서 살았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 관람자의 시선을 중앙으로 향하게 한다. 라파엘로는 건축물 가운데 뚫린 아치를 만들어 중심에 선 인물들이 돋보이는 밝은 배경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표현법은 분명 스승 페루지노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배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