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평

[아츠앤컬쳐 지난 4월 24일, 영화 <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가 국내에서 처음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건국대 캠퍼스 KU시네마테크를 찾았다. 관람시간(pm 2:50)에 맞춰 도착했는데 극장의 객석 수는 152석으로 크진 않았지만 아주 편안하게 관람했다.

평소 피렌체와 산드로 보티첼리 그리고 메디치 가문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매우 흥미롭게 영화를 봤다. 다큐멘터리 영화였고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었기에 영화를 이해하기 쉬웠다.

영화는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봉'과 '비너스의 탄생'이 중심이 되어 보티첼리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그의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디 반니 필리페피이지만, '작은 술통'이라는 뜻 을 가진 보티첼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피렌체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위대한 자'(1 Magnifico)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의 후원을 받았다.

1492년, 로렌초가 죽으면서 피렌체는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혼란에 빠져들었다. 또한 15세기 말이라는 세기말적 상황에서 대중들은 종말론의 공포에 휩싸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도미니코 회 수도사 사보나라가 대중의 허영을 지탄하고 갱생을 촉구하며 시뇨리아 광장에서 사치품 을 불태우는 '허영 화영식'을 열었는데 이때 보티첼리는 사보나롤라의 신봉자가 되어 자신의 많은 그림을 불 속에 집어넣었다. 이후의 그림에서 이교도적인 색채를 지우고 장식적인 요소 를 배제했다고 한다.

보티첼리는 1510년에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가 사망했고 이후 그의 작품들은 수장고에 잠 들어 있다가 거의 300년이 지나서 '라파엘 전파'에 의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고 빛을 보게 되었 다.

라파엘 전파(BDiE)는 1848년에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 영국의 화가들이 결성한 개혁적인 문예 유파이다.

글 | 전동수 발행인



보티첼리… 문화는 힘이 세다

메디치家, 예술에 막대한 투자
르네상스 화려함 꽃피운 계기
보티첼리도 든든한 후원받아

‘비너스의 탄생’등 걸작 남겨
문화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
K-컬처를 키우고 빛내는 길


- 글, 황영미 -

시네라처문화콘텐츠연구소장

영화평론가, 前 숙명여대 교수

일본의 후쿠다케재단은 나오시마라는 황무지 섬에 과감하게 투자해 나무를 심고 미술관을 건축하여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찾아 멋진 예술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 이미지와 가치를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많은 수익도 거둔다고 한다. 오늘날 문화는 국가 경쟁력이나 사회·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르네상스 문화를 주도했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家)다. 메디치 가문은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을 후원하며 헬레니즘 문화를 부활시켜 문화운동의 붐을 일으켰다.

신(神) 중심의 중세적 사고를 내던지고 인간 중심의 새로운 인간관과 자연관을 표현하는 문화예술부흥 운동인 르네상스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화가들과 세계적인 미술관을 다룬 명품 4K 다큐멘터리 9편이 ‘세기의 천재 미술가 세계의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4월부터 12월까지 매월 개봉된다. ‘새로운 아름다움’의 창조자로 불리는 화가 ‘보티첼리’의 예술 세계를 다룬 ‘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가 지난 4월 말 첫 번째로 개봉됐다. 보티첼리의 두 대표작으로 꼽히는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비롯해 그의 유명 작품들을 미술관에서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상세히 볼 수 있고, 전문가들의 해설이 곁들여져 보티첼리의 예술성을 새롭게 재확인하게 한다.

보티첼리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의 지원을 받아 역사·신화·종교·인물을 소재로 수많은 걸작을 그렸다. 이 다큐멘터리는 보티첼리 작품의 미적 아름다움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화면을 장식하면서 관객을 압도한다. 작품의 부분 부분을 클로즈업해 시대 배경과 함께 관객에게 제공함으로써 보티첼리라는 범접할 수 없는 예술가의 세계에 근접하게 하면서 전율케 한다. 또한,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작품 속에 담긴 동방박사들의 얼굴에 메디치가 사람들의 얼굴이 구현됐으며, 심지어 메디치가의 정점을 구축한 로렌초 메디치의 시선이 관람객을 향하고 있다는 것까지 설명한다. 즉, 이 작품이 메디치 가문의 가족 초상화가 되는 셈으로, 메디치가는 예술에 투자해 평민 출신이었던 메디치 가문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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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을 둘러싼 정쟁과 권력 암투가 누아르 영화처럼 재현돼 단순한 다큐멘터리를 넘어서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한다. 메디치가를 유럽 금융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은 로렌초 메디치는 교황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왕에게 돈을 빌려줄 정도로 막강한 금융 자본을 가진 메디치가의 후계자였다. 그러나 점점 막강해지는 메디치 가문의 부와 권력을 견제하는 세력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수차례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던 로렌초는 호신술과 검술도 갖추게 된다. 두오모 성당에서 예배를 보던 중 메디치가와 사이가 좋지 않던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암살 기도로 동생 줄리아노를 잃는다. 십여 차례나 자상을 입은 동생이 숨진 이후, 로렌초가 암살에 연루된 인물들을 하나둘씩 처단해 거리에 시신을 매다는 등 피렌체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과정도 영화 속에 전개된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메디치 가문은 실제로 오늘날 화폐 기준으로 수천억 원을 예술 사업에 쏟아부었다. 도시국가였던 피렌체에 귀족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학교와 도서관 등을 세우고 예술가들은 물론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 ‘신곡’을 쓴 단테 등 위대한 과학자·작가·철학자를 후원했다.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여 메디치궁에 장식해 피렌체에 문화의 꽃이 만발하게 하였다. 메디치가의 사무실은 우피치미술관으로 만들어져 오늘날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당시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보티첼리의 예술이 오늘날의 예술과 문화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앤디 워홀, 레이디 가가 등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사례를 등장시킨다. 앤디 워홀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색감을 달리하면서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포스트모던 팝아트를 구현했으며, 보티첼리의 작품이 여러 상품에도 이미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이 다큐멘터리는 놓치지 않는다. 메디치 가문이 번 재산을 예술에 투자해 오히려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기저에는 어떤 정신이 숨어 있을까. 권력과 부만 손에 넣는다고 해서 가문이 가치 있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는 힘이 세다. 문화에 대한 투자가 바로 기업을 가치 있게 만드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예술가들을 과감히 지원해 K-컬처를 세계적으로 빛내는 기틀을 만드는 것이 세계 경제력 10위대인 대한민국의 부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일 아닐까? 영화 ‘기생충’의 해외 수익이 3000억 원이었다는 사실을 문화가 가진 힘의 사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은 음악가·화가·무용가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가 많다. 하지만 아직 명성을 얻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재능 있는 예술가가 많이 묻혀 있다. 국가와 기업 차원의 과감한 후원이 문화 경쟁력이 있는 멋진 국가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들기를 기대한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이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셨다. 


글 | 황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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